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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강사 정재찬 교수 강연 '시를 잊은 그대에게 - 밥벌이에 대하여' 특강 영상

정재찬 강사님

강연일

조회수5835

강연내용 소개
우리는 어쩌다 일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 걸까요?
일, 아니 밥벌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환기시킬 시와 함께 하는 오늘의 '인생'!
흙길에서 꽃을 피워 꽃길을 가꾸어 갈 당신의 한 주에 힘을 드릴게요.
강연분야

동기부여( 동기부여, 삶의자세 )

인문학( 인문학, 문학, 시 )

힐링( 힐링, 마음 )

주요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 문학교육 전공
-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 석사 현대시 전공
-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학사
주요경력
-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학장
-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장
- 한양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 원장
- 한양대학교 입학처장
- 한국문학교육학회 회장
-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대중화위원회 운영위원
-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교수
- 청주교육대학교 교수
강연주제
- 시와 함께 하는 인생 식탁
- 절망을 넘어 희망을 노래하는 법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인생을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1가지
- 시를 잊은 그대에게
주요저서

안녕하세요. 강사섭외, 스타강사 강연전문기업 호오컨설팅입니다.

이번에는 시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시를 즐길 수 있게 하는 특강(강의)를 진행하시는 정재찬 교수님의 강연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기업교육 특강강사로 많은 강연을 진행하시는 정재찬 교수님의 강연 영상이 본문 마지막에 있으니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제가 주제를 '밥벌이'로 잡아봤어요.

별 거 있어요? 인생이

밥벌이라고 하는 게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시로 듣는 그런 강연이 될 텐데 '시' 그러니까 너무 부담감 갖지 마시고

오히려 편안하게 들으시면 더 와닿는 게 있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의 정재찬 교수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런 얘기들을 많이 했죠.

어렸을 때 먹기 위해서 사는 거야? 살기 위해 먹는 거야?

그래서 그거랑 연관된 제가 시간 편을 여러분들께 읽어드릴게요.

 

<소금시 - 윤성학>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

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

나는 소금 병정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다

소금 방패를 들고

거친 소금밭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해

한 달을 절어 있었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니




느낌이 어떠세요. 인생 서글프죠??

지금 이 시를 읽으면서 저는 뭐가 떠올랐냐면은 제가 어느 외국 항공사에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점심이 나왔어요. 무슨 봉지가 하나 있는데 거기 뭐라고 써 있었냐면요.

'The color of snow The taste of tears' 라고 써 있었어요.

눈의 빛깔 눈물의 맛. 바로 소금 봉지였습니다.

여러분 이 항공사 만만하지 않죠. 그냥 솔트라고 쓰지 이런 사람 나가세요.

저는 거기서 아주 '시'적인 희열을 느꼈어요.

'소금 하나도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구나'

지금 이 시에선 뭐라고 얘기했냐면 소금이 우리가 솔트라고 부르는데 지금 우리가 받는 월급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흔히 '샐러리맨'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그 샐러리의 어원이 '솔트'입니다.

사실은 월급 받는다는 게 소금 받아오는 거예요.

로마 시대 때 '솔저'들 그거의 어원 역시 '솔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에서 로마 솔저들이 자기의 눈물과 땀을 다 쏟아야 비로소 소금을 받아서 먹고 사는 거예요.

내가 그게 혹시라도 힘들어서 울면 눈물이 다 내 몸을 녹이기 때문에 내가 소금을 받아올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인생은 정말 이렇게 서글픈 걸까 우리에게 칼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유명한 작가 김훈 선생은 먹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라면을 끓이며 - 김훈>


모든 '먹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

모든 포유류는 어금니로 음식을 으깨서 먹게 되어 있다.

지하철 계단에서 쭈구리고 앉아서

짜장면을 먹는 걸인의 동작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냅킨을 두르고 거위관을 먹는 귀부인의 동작은 같다.

그래서 밥의 질감은 운명과도 같은

정서를 형성한다

전기 밥솥 속에서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 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전이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우리 김훈 작가님 참 냉정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일이야'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밥벌이 하기 싫습니다.

밥벌이라고 하는 이 지겨운 노동을 내가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가 십상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는 일들을 왜들 그렇게 하려고 하는 걸까요??

밥벌이 하려는 이 문제는 남녀도 없고 노소도 따로 없습니다.

지금 남녀 가릴 것 없이 좁은 취업의 문 앞에서 좌절을 겪는 청년 실업자 문제로 우리가 떠들썩하고요.

출산은 장려한다고 하면서 정작 정당한 대우는 해주지 않아서 서럽기까지 한 이른바 경단녀들

혹은 한창 나이에 퇴직 당해서 실업 전선을 헤매는 중년들 혹은 아직 충분한 체력과 경륜과 지혜가 있음에도 사회의 뒷전으로 밀려난 노년 세대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그 지겨운 밥벌이 하나 변변히 할 수가 없어서 인간적인 자존감마저 무너짐을 겪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 아닙니까.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는 더욱더 밥벌이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래도 절망, 포기, 비관은 항상 나중에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하죠.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그러니까 이번에도 아마 우리는 버텨낼 겁니다.





이런 시가 하나 있습니다. 이 시는 제목부터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퇴근길-안도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이 시의 배경은 IMF 시대입니다. 그 전에는 흥청망청 회식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한 순간 최고의 회식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에요.

"아 이것마저 없다면 정말 절망이다" 하는 이 시를 여러분 거꾸로 읽어봅시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만 있어도 나는 버틸 수 있겠다"

사실 "아 이것마저 없다면!" 하는 그거 하나만 있어도 의외로 잘 버텨지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가령 사랑하는 당신, 사랑하는 우리 아들, 이 사람들 한 사람만 있어도 지금 현재 비정규직이라도, 아니 아직 취업을 못해도, 아니 직장을 잃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만 있으면 우리 삶은 의외로 견딜 만해집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다루고자 하는 이 일과 삶이라고 하는 주제는 항상 이렇게 좀 양면을 바라봐야 되는 어려움이 있어요.

우리가 흔히 '워라벨'이라고 많이들 얘기하는데 저는 설정이 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워크 또는 라이프라고 해놓으니까 워크는 라이프가 아니라고 이건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거죠.




 

근데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면서 보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일하면서 행복하지 않다가 나와서 조금 행복하겠다.

그게 그나마 잘 사는 거다라고 하는 설정 자체가 너무나 비극적인 설정 아닌가합니다.

사실은 일도 삶이고 내가 삶이라고 말한 그 삶도 삶이 그런 상태에서 일을 즐겁게 만드는 쪽으로 노력해야 되는 건 아닐까요??

물론 저도 인정합니다.

일을 그렇게 재미없게 만들어낸 이 사회 그건 문제입니다.

그런데 자꾸 우리로 하여금 '나는 일의 노예야. 그래서 밥벌이 힘들어. 난 정말 힘들지만, 싫지만,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럼 내 인생은 행복해질 방법이 없는 겁니다.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하는 주체입니다.

그렇다면 힘든 노동에도 숭고한 의미를 찾아줘야 될 텐데 그러지 못한 것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에게 노동시인으로 잘 알려진 송경동 시인은 이런 시를 썼어요.

 

<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 - 송경동>


보슬 비 오는 날

일하기엔 꿉꿉하지만 재끼기엔 아까운 날

한 공수 챙기러 공사장에 오른 사람들

딱딱딱 소리는 못질 소리

철그렁 소리는 형틀 바라시 소리

2인치 대못머리는 두 번에 박아야 하고

3인치 대못머리는 네 번에 박아야 답이 나오는 생활

손으로 일하지 않는 네가

머릿속에 쌓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허술한 것이냐고

한뜸 한뜸 손으로 쌓아가지 않은

어떤 높은 물질이 있느냐고

물렁해진 내 머리를

땅땅땅 치는 소리




여러분 못 박는 건 지겨운 일일까요? 행복한 일일까요? 내가 책상을 만드는데 책상 노동자예요.

판은 돌아가고요. 저는 못만 박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기쁨은 못 느끼고 저는 오로지 나중에 주어지는 보수의 형태로 즉 소금으로 주어지게 되면 그걸로 내가 기쁨을 누리는 거예요.

사실 덜 행복하죠.

만약에 제가 제 자식을 위해서 책상을 만들어준다고 그랬으면 아마 매뉴얼에는 열 번 사포질 하라고 돼있는 걸 저는 백 번을 했을지도 몰라요.

사실은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장인들입니다.

우리 사회를 노동을 통해서 한 단계 문화가 올라갔어요. 한 단계 예술이 만들어졌어요.

그분들이 우리를 이만큼 높여놓은 것이지 나 그냥 밥벌이 하려고 왔다고 했으면 우리 문명은 이만큼 됐을 리가 없습니다.

항상 우린 네모난 책상에서 네모나게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노동의 본질은 유희의 본질하고도 맞닿아 있는 묘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어요.

자 예를 들어 우리 퍼즐 맞추는 거 있죠.

그거 왜 맞춥니까?

세상에 왜 스스로 그렇게 고통에 빠뜨려 놓고 처음엔 잘 맞춰져 있는 그림을 괜히 흩어놓고 다시 그거를 만드는 걸 하는데

왜 맞춰지면서 우린 행복감을 느끼는 겁니까?

제가 젊었을 때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제 친구가 병원에 있으면 심심할 거라고 퍼즐을 갖고 온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 때문에 환자인 저는 침대에 퍼즐이 놓여서 맞출 때까지 서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게 다 만들어주니까 그렇게 까닭없이 기쁩니다.

왜 그렇게 행복한 걸까요? 퍼즐뿐만 아니라 맛있는 밥 먹기 위해 왜 노력하는 것일까요?

옆 동네 카센터에서 고치지 못한 것을 '내'가 고쳤을 때, 그 사람은 단순히 월급을 얻는 행복 이상으로 자기 만족감에 가득 차요.

의사들도 어떨 때 제일 좋아할까요? 아무 이유를 모르는 환자를 고쳤을 때,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거죠.

그게 일 아닐까요??

정말 일은 내가 그냥 밥벌이 소금만 받아오고, 샐러리만 받아와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뭔가의 가치를 만들어내서 그때 정말 행복한 거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가치를 만들어내는 길들은 의외로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길들입니다.

 




이른바 흙길들만이 그런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꽃길로만 가세요' 하는 말이 그게 꽃으로 깔린 포장된 길이든, 꽃이 양 옆으로 있는 길이든, 그 길을 걷는 게 마냥 행복한 걸까.

여러분 그 모든 꽃길들은 그 바닥에 흙을 깔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흙길이 아니면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는 흙길이 '오늘도 내가 어쩌다 여기 왔지, 내가 이 밥벌이하느라고 왜 이렇게 힘든 흙길을 걸어야 돼?' 할 때

'내가 여기서 뭔가 꽃을 피우고 있을지 몰라' 하는 그 생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의학박사 이국종 교수 생각해 볼까요. <골든아워>라고 하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업의 본질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발버둥치다가 깨져나가는

바보 같은 사람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흔적" 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무슨 남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도 아니고, 각별히 책임감이 강한 영웅도 아니고,

그냥 응급의학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업의 본질이 요구하는 게 그런 거다.

그래서 장시간 수술도 해야 되는 거고, 헬리콥터도 띄워야 되는 거고,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이 업의 본질이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응급실에 있는 남궁인 선생이 쓴 책이 있어요.

나는 하루에도 수차례 누워있는 환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일단 환자 가까이에서 눈빛을 교환하고 나면

그 환자가 오래 기다린 탓에 힘겨워하고 있다거나,

뒤늦게 나타난 내게 억하심정을

호소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습관처럼 환자에게 다가가

이마에 깊게 푹 손바닥을 얻는다

그러면 환자의 이마에서 온기가 느껴지고,

방금까지 다급했던 땀내와 열기가 훅 밀어닥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떻게,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리고 가만히 그의 마음을 느껴본다

그 사람에게 같은 사람으로 성큼 다가가는 느낌이다.





다들 응급실 경험 한 번씩들 있으실 겁니다 가보면 정말 아수라장입니다.

여러분 설마 응급실이 온 순서대로 치료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야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긴급한 사람 순서로 고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좀 늦게 왔어도 생명이 오고가고 있다면 그 사람부터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응급실에서 만족한 환자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아수라장일 때 가서 어떻게 정리하느냐 이마에 손바닥을 푹 얻는다 그러면 말이야 사람들이 희한하게 다 양처럼 온순해진대요.

여러분 이마의 손을 딱 얹었는데 그 순간 '왜 이렇게 늦게왔어요??!!' 이러겠어요?

이마의 손바닥을 딱 얻는 순간 양처럼 온순해진다는 거

그러면 이 의사가 일종의 환자를 대하는 테크닉으로 익힌 걸까, 아니면 그게 응급의학의 무슨 매뉴얼에 있는 순서일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마지막 문장이 어떻게 돼 있었죠. 그 사람에게 같은 사람으로 다가가는 느낌을 나는 느끼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이마에 손 얻는다고 환자가 낫겠습니까,

응급의학자로서 내가 대충 그 다음 순서 오면 되고, 컴플레인 해도 안 들은 척 하면 되고, 다 할 수 있지만

같은 사람으로 다가가 주려고 하는 그것까지가 이 사람들의 업의 본질을 다 하고 있는 행위가 아닐까.

그래서 여러분들께 이 시를 꼭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마 -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에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우리 어렸을 때 엄마랑 할머니가 이렇게 이마에 손 대주고 혹은 배에 손 대주면서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

그럼 정말 플라세보 효과 경험해 보셨죠.

배가 낫는 것 같았고, 이마가 시원해지는 것 같았고, 물론 열도 잴 수 있었고, 그게 우리 이마의 역할이에요.

이마가 왜 만들어졌나 봤더니 그러라고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딱 손바닥 크기만 하지 라고 이 시는 이야기한거예요.

그런데 세밑에 사람들 다 흥청망청거리는 연말에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는 건

아마 소리도 내지 못하고 서러워서 울었다는 걸 겁니다.

아파서 운 것만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자기 이마 덮으면 시원해지겠습니까? 같은 체온입니다.

그런데 내가 오죽하면 내 오른팔로 이마에 얹고 누워서 그걸 견디고 있었느냐 그게 너무 서러워서 울었다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겐 이 말을 덮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알고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고독하고 혼자 삽니다.

그래서 사실은 직업이라고 하는 게 만들어진 걸 거예요.

직업이 단순히 돈벌이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꿔주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다 각자 저마다 결핍된 게 있으니까요.

오늘 제가 여기 오기 위해서는 제 힘으로 올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자동차를 만들어줬을 거고, 누군가는 거기에 기름을 넣어줬을 거고,

누군가는 길을 만들어줬을 거고, 이게 다 내 이마를 덮어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보자는 말이에요.

그럼 내가 하는 밥벌이도 알고 보면 누군가를 채워주고 있는 행위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 직업 우리 밥벌이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먹고 살려고 견뎌야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이 살려고 나도 살고 너도 살리려는 행위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오늘 여러분들이 밥벌이 하신 거는 여러분들이 소금만 구해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웃들에게 소금을 나눠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우리 인생의 밥벌이 입니다.

 

 

지금까지 특강강사로 많은 강연을 진행하시는 정재찬 교수 '시를 잊은 그대에게 - 밥벌이에 대하여' 특강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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