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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의

​[강연]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 특강 '사무라이의 후예는 왜 패배했나?'

임용한 강사님

강연일

조회수2235

강연내용 소개
🔹사무라이의 후예는 왜 패배했나?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면서 상식 파괴자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는 미국 장군 조지 S. 패튼. 유럽 전선 최고의 ‘파이터’로 평가받는 패튼 장군은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전투에 투입되기 전, 미군은 독일군 간의 교전에서 최악의 패전을 겪는다. 겨우 독일군의 2개 사단에, 단 이틀 만에 미군 1개 군단이 궤멸한 것. 하지만 패튼 장군은 이후 시칠리아, 튀니지, 노르망디 등지에서 맹활약하며 과거 패전의 굴욕을 이겨내고 미국을 승전국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그가 택한 방법은 두 가지—엄격한 복장 규율과 이른바 ‘임무형 전술’이다. 패튼의 집단 통솔력이 현대 기업의 경영 방식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견고한 기업문화 구축과 함께 구성원 개개인의 심리, 특징을 파악하여 그 역략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는 패튼의 방식에서 조직을 운영하는 기업 리더들에게 하나의 귀감을 전달한다.
강연분야

인문학( 인문학, 역사, 고전 )

경영( 경영, 혁신, 경영전략, 변화, 자기경영, 위기관리 )

주요학력
-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
-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 연세대학교 사학과 학사
주요경력
- 경희대학교 강사
- 공군사관학교 강사
- 충북대학교 연구교수
- 한국군사사학회 이사
-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강연주제
<전쟁으로 보는 경영의 지혜>
- 전쟁으로 보는 경영의지혜
- 그림으로 보는 전쟁사
- 창의와 혁신의 비결
- 위기 관리능력
- 역사적인물을 통해보는 리더십
- 명장의 전술과 경영
- 전격전과 임무형 전술
- 손자병법으로 보는 전략과 실행
- 롬멜과 패튼
- 삼국지인물을 통해보는 리더십
- 삼국지가 주는 5가지교훈
- 삼국지, 진실과 허구
- 세종의 소통의 리더십
<인문 교양>
- 인문학 기행
- 조선의 국왕의 통치스타일
- 한국의 개혁가와 개혁정책
- 실학과 박제가
- 로마 제국을 만든 힘
- 르네상스와 로마
-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대가는 무엇이 다른가
- 일본의 문화와 경영전통
- 조선국왕들의 기발한 리더십, 최악의 리더십
- 세종과 카이사르의 대민정책
- 역사속의 리더십(그리스신화, 플루타르크 영웅전, 르네상스)
- 조선 국왕 이야기(태종의 팔색조 리더십 등)
- 역사란 무엇인가(역사 이해방법 및 목적, 우리시대의 문제 등)
주요저서

안녕하세요. 강연 전문 기업 호오컨설팅입니다. [HRD]

이번에는 전쟁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경영에 대한 연구와 특강(강의)를 진행하시는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 특강(강연)영상을 준비했습니다. 본문 마지막에 강연 영상이 있으니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반자이 돌격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반자이라는 말이 일본어로 만세라는 뜻이죠.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군이 천왕폐하 만세 하고 외치고 돌격했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현대전인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은 왜 이렇게 무모한 돌격을 했던 걸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 사람들은 사무라이 문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 '사무라이 정신'의 상징이 '일본도'입니다. 이게 땅에서는 만에 하나 쓸모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투기를 타고 올라가는 항공기 조종사들까지도 일본도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사실 전투기 조종석이 굉장히 좁아요.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로 좁거든요. 그래서 조종키를 움직이다가 뭐가 칼에 걸려서 조종을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고, 하늘에서는 아무 짝에 쓸데없는 물건인데도 너무나 이걸 차고 올라가고 싶어 해서 나중에는 계급 제안까지 받았다고 해요. 

 


 

실제로 일본군이 믿었던 건 이 칼이 아니라 사무라이 정신이었습니다. 이 무적의 정신으로서 현대전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고 믿었죠. 

남태평양의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이라는 섬이 있습니다. 일본군이 승승장구하면서 태평양을 거의 휩쓸었고 마지막 남은 곳이 오스트레일리아 호주였습니다.

1942년 5월에 소수의 일본군 부대가 과달카날섬에 진주해서 호주 공습의 전진기지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일본군이 호주까지 침공하게 되면 연합군 측에서는 태평양의 기반이 완전히 없어지게 돼요. 

반격을 모색하고 있던 연합군은 그해 8월에 기습적으로 과달카날에 상륙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군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파견하게 되는데요. 

그 때 선택된 이치키 대좌는 관동군 중에서 최고의 장교라고 꼽히던 사람이었어요. 이치키 대좌는 자신감이 넘쳐서 과달카날 파견 명령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바로 옆에 있는 툴라기 섬도 점령해도 되는가?", '내가 가서 다 해결해 버리겠다.' 이런 뜻이었죠. 당시 거기에 미군 1개 사단이 있었는데 일본군 1개 연대, 그것도 절반도 안 되는 일진 병력으로 

이치키 대좌는 미 해병대를 공격할 계획을 세웁니다. 물론 이치키 대좌의 자신감이 근거 없는 건 아니었어요.




당시 관동군은 중일전쟁(1937-1945)을 거치면서 전투 경험이 비교적 풍부했죠. 실제 전쟁에서 전투 경험이 있고 없다는 심한 경우에는 10대 1의 전력 차이가 난다고도 합니다. 
당시 미 해병대는 전투 경험도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장비도 형편 없었습니다. 당시 미 해병대의 기본 소총은 우리가 이 차 세계대전 하면 생각나는 M1 소총이 아니라 구형이었던 스프링필드 소총이었어요.
그런데 그거라도 온전히 있었으면 다행인데 당시 재해권과 제공권은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미군 수송함대가 병력 상륙 후에 보급 물자를 둬야 되는데 너무 겁이 나서 물자를 내리다가 도망가버립니다. 
전쟁사를 보면 미군을 제일 부러워하는게 아무튼 먹는 건 잘 먹거든요. 그러나 과달카날에서는 미군이 먹을 게 없어서 미군 병사 절반이 영양실조 등 여러 가지로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본군이 비록 연대 병력이었지만 제대로 된 공격을 했더라면 미군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일본군이 미군을 도와줍니다.
이치키 대좌는 자신감이 너무나 넘쳤던 나머지 2진 병력(일본군 후발)이 상륙하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약 1천 명밖에 안 되는 병력으로 미군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또 하나 일본군의 또 다른 승부수는 야간전투였습니다. 사실 서양 군대는 야간 전투를 안 합니다. 일본군은 알고 있었죠. 일본군은 "밤에 기습하면 미군은 꼼짝하지 못한다"라고 생각했어요.



왜 서구에서는 야간 전투를 안 하나요??
그게 지금도 불가사의인데 대체로 그들은 해가 지면 전투 안 해요, 중세 때부터 그랬어요. 그래서 한국전쟁 때까지도 안 하다가 한국전쟁 끝나고 나서부터 야간 전투를 이제 많이 하긴 했어요. 
물론 2차 대전 때에도 특수부대는 야간전투를 했는데 1942년 8월 20일 새벽에 일본군이 일루강으로 접근합니다. 약 200명의 병력, 1진이 그냥 돌격을 시작한 겁니다.
처음엔 미군도 엄두가 안 나서 쏠 생각을 못 해요. 왜냐하면, 멀쩡하게 걸어오니까요. 그런데 결국 누가 쏘기 시작했죠. 



기관총의 십자화망에 걸리면 200명이 점멸하는 데에는 보통 5분 정도 걸립니다. 그냥 무너졌죠. 이 상황에서 이치키 대좌는 더 무모한 작전을 세웁니다.
"우리가 강으로 뛰어들어서 동작이 느려지고 행동 반경이 좁다!그래서 아예 하구로 나가서 오히려 그쪽으로 달려버려요. 정말 수평선이 보이는 환한 열대 바다를 배경으로 마구 달려드는 거예요. 
그건 인정해줘야 되는데, 정신 무장은 정말 확실해서 보통 군대는 달리다가 앞사람이 쓰러지면은 못 뛰어요. 그런데 일본군은 앞사람이 쓰러져도 밟고 넘어와서 쓰러지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포개서 죽는 거죠. 
절망한 이치키 대좌는 연대기를 불태우고 자결을 합니다. 결국 한 달 후인 9월에 일본군의 본대 병력(약 6천명)이 상륙합니다. 
병력 상으로 보면 역시 일본군이 조금 적지만 제해권을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어서 일본군에게 승산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원래대로 하면 차분하게 진격을 해서 미군 앞에 진지를 구축하고 그 후에 공격해야 하는데 새로 온 일본군 부대도 사무라이 정신의 과하에 기대는 작전을 세웁니다. 
모든 병사가, 심지어는 박격포탄조차도 손으로 들고 정글을 헤쳐나가서 미군 기지를 공격하기로 한 거예요. 정예군대도 정글을 헤치고 나갈 때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가 하루에 3~4km에요. 
그리고 항상 비가 와서 누워서 잠을 자지 못해요. 그렇게 미군 방어선 앞에 왔는데 쉬지도 않고 돌격하는 거죠.



이 '사무라이 정신'의 문제가 뭐냐면, 작전 회의를 한다거나 전투 전에 고민하거나 걱정하면 용기를 감소시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 밤에 정말 혈전이 벌어지는데 일본군이 흩어져서 
각개돌격을 하다 보니까 굉장히 소모적인 돌격을 해요. 결국 전투를 하다 보니까 미군들이 자신감이 생겼대요. 왜냐면, 같은 장소로 계속 오니까요. 처음에는 떨던 미국 병사들이 예측을 하기 시작한거예요.
다음 날 아침에 보니까 또 일본 병사들이 포개서 쓰러져 있더라고 해요. 그래서 당시 미군 전사는 59명, 일본군 전사는 700명 이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무모한 반 자이 돌격을 일본군은 왜 계속 한 걸까요? 사실은 일본군도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니라 앞서 성공을 했어요. 
청일전쟁(1894-1895) 때부터 중일전쟁(1937-1945)까지 중국군과 싸울 때 많은 성공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군은 이것을 자신의 전술, 중국군의 훈련 및 무기 상태, 지형 이런 요인들에 의한 결과라고
분석하지 않고, '과감한 돌격',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사실은 영국군도 돌격하고, 미 해병대도 돌격합니다. 돌격 없는 군대가 어딨어요. 근데 스스로 착각을 하는 거예요. 
'반 자이 돌격은 우리만 한다' 그리고 이런 행동에는 사실 미군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요.



왜냐하면 당시 미국의 생산력은 정말 엄청나서 미군하고 물량으로 싸우면 진다고 생각해서 미군에게 없는 걸로 싸우자, 없는 게 뭐냐 생각해서 '정신력'이다! 이렇게 나온 거죠. 
그래서 왜 그들이 승리했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이 정신력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것을 경영적인, 또는 혁신과 관련된 테마로 말씀을 드리면 '자신의 장점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면 패배한다'는 겁니다. "단점을 고치려 하지 말고 장점을 살리려고 노력해라" 이런 말들을 정말 많이들 하세요. 
그런데 이 말이 정말 위험한 말이에요. 



당신의 장점은 그 상황에서 장점일 뿐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이게 장점이다'가 아니라 그것이 왜 그때에는 장점이 되었는가를 분석해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 분석을 하지 않고 이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해서 되풀이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혁신이라는 것은 과거의 장점을 버리는 데서 시작해야 됩니다. 과거의 성공은 일회용품입니다. 어떤 장점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서 무한 반복하는 집단은 자그마한 변경도 하지 못합니다. 
자기들이 훈련했던 것을 반복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혁신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 장점을 바꾸고 변경하는 것은 그때 가서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무한한 훈련과 자기 혁신이 필요합니다.


"혁신은 당신의 성공 경험을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 특강 中


지금까지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 특강 '사무라이의 후예는 왜 패배했나?' 강연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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