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프롤로그 _파리, 가슴 설레는 빛과 예술의 도시

외젠 들라크루아 - 혁명의 불씨를 꽃피운 파리의 정신

루이지 루아르 - 영혼이 쉬어가는 정원의 도시

장 프랑수아 라파엘리 - 삶의 무게까지 담아낸 거리의 화가

클로드 모네 - 휘날리는 깃발에 담긴 파리의 얼굴

장 베로 - 거리 한가운데서 포착한 파리의 일상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 세상의 온기를 기록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새로운 기회

마르크 샤갈 - 사랑의 온도로 채색한 기억의 지도

파블로 피카소 - 상실의 끝자락에서 만난 한 줄기 빛

조반니 볼디니 - 붉은색으로 되살린 열정의 물랭 루즈

일리야 레핀 -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한 빛의 질서

조르주 쇠라 - 집념의 점으로 완성해낸 교향곡

귀스타브 카유보트 - 가까이 있지만 누구보다 먼 거리의 시선

에두아르 마네 - 화려한 조명 아래 현실을 비추는 거울

모리스 위트릴로 - 치유의 백색으로 세상을 칠한 화가

수잔 발라동 - 뿌리처럼 단단한 위로의 그림

카미유 피사로 - 고백처럼 남긴 마지막 풍경

에필로그_평범한 일상을 위로하는 작고 소중한 순간

●책 속으로

파리,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도시.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 모나리자의 비밀스러운 미소, 에펠탑과 센강 위로 물드는 노을⋯⋯. 파리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낭만 속 여행지다. 특히나 내게 있어 파리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오랫동안 마음 깊이 품어온 자신과의 ‘약속’ 같은 곳이었다. 파리는 여전히 설레는 도시고, 그림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101점의 다양한 파리 풍경과 함께 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담아낸 이 책은 나의 파리 여행을 돌아보며, 다른 누군가가 첫 파리를 꿈꿀 때 조금 더 풍부한 시각을 갖고 출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부디 이 책을 펼친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자신만의 파리가 한 편의 명화처럼 그려지기를 바란다.

- 「프롤로그」 중에서

튈르리 정원은 파리라는 도시의 리듬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장소였습니다. 루이지 루아르의 그림은 눈앞의 풍경을 넘어 우리가 도시를 어떻게 기억하는지까지 말해줍니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대칭의 질서와, 가까이 다가갈 때만 보이는 바닥과 벽돌의 질감. 그 작은 차이가 모여 오후의 기분을 만들고, 우리는 그 기분을 ‘나의 파리’로 받아들입니다. 언젠가 파리에 가면 루브르의 거대한 명작들만 보고 지나치지 마시고, 정원으로 한 걸음 나와 보세요. 나무 그늘과 자갈 소리, 아이들의 웃음 사이에서 이 그림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금 정원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루아르가 거닌 그 길에서, 여러분도 각자의 속도로 당신만의 파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 루이지 루아르, 「영혼이 쉬어가는 정원의 도시」 중에서

파리라는 도시는 때때로 그 자체가 하나의 무대가 됩니다. 1878년 6월 30일, 바로 그날이 그랬습니다. 붉고, 희고, 푸른 삼색기가 바람에 펄럭이며 거리를 가득 수놓았고 시민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몽토르게이 거리와 생드니 거리, 파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두 길목은 깃발의 물결로 출렁였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을 높은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클로드 모네입니다. 모네는 그날 그림 두 점을 남깁니다. 언뜻 보면 평범하게 도시 풍경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작품에는 한 나라의 회복, 한 화가의 시선,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찬란한 열망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 클로드 모네, 「휘날리는 깃발에 담긴 파리의 얼굴」 중에서

그의 시선은 늘 기념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먼저 닿았습니다. 카페, 극장, 공원, 강변의 벤치 등 누군가 잠시 머물고 스치는 자리에서 표정과 몸짓을 포착한 것입니다. 근대를 상징하는 넓은 대로, 불바르는 그에게 도시의 새 풍경인 동시에, 서로를 스치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확인하는 무대였습니다. 르누아르는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장면을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란히 앉거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서로에게 내어주는 온기를 기록하려 했습니다. 잠깐 멈춰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함께 걷는 일. 그것이 르누아르가 남긴 파리의 풍경이며, 우리가 지금도 그곳에서 배워야 하는 태도입니다. 이 책이 완성되면 다시 그 다리를 건너야겠습니다. 이번에는 누군가와 나란히, 같은 속도로.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세상의 온기를 기록한 화가」 중에서

샤갈의 파리는 늘 창문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는 ‘선보다 색이 먼저’인 화가였고 사실보다 기억을 먼저 불러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 도시는 딱딱한 지도 속 모습이 아니라 꿈을 그려내는 무대처럼 보이고, 사람들은 마음의 부력으로 하늘 높이 떠오릅니다. 오늘 우리에겐 어떤 창이 필요할까요? 파리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사랑을 작게, 계속 실천하는 태도입니다. “삶이 언젠가 끝난다는 걸 알기에, 남은 시간을 사랑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샤갈은 말년에 이런 말을 반복합니다. 미련도, 욕심도 없는 사람이 내린 결론이었죠. 파리가 그에게 꿈을 허락했듯, 우리가 서 있는 이곳도 우리에게 꿈꿀 기회를 줍니다. 창문을 열어보세요. 그리고 샤갈처럼 오늘의 작은 장면을 당신만의 색으로 덧칠해보세요. 언젠가 뒤돌아보면 이 풍경은 가장 아름다운 기억의 캔버스가 되어 있을 거예요.

- 마르크 샤갈, 「사랑의 온도로 채색한 기억의 지도」 중에서

젊은 화가 조르주 쇠라.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그는 감성보다는 계산을, 직관보다는 이론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쇠라는 미술도 과학처럼 탐구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색을 팔레트에서 섞는 대신 관람자의 눈에서 섞이도록 유도했습니다. 이 기법이 바로 그 유명한 ‘점묘법’, 작은 색점을 나란히 찍어 멀리서는 하나의 색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입니다. 점 하나 찍는 데 하루, 그림 한 점 완성하는 데 수년이 걸립니다. 그야말로 장인 정신의 끝판왕에 가까운 실험이었습니다. 쇠라는 이 그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완성하기 위해 2년 동안 무려 40장의 스케치와 20점의 소묘를 남겼습니다. 한 점의 그림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설계도에 가까웠습니다. 수직과 수평의 구도, 반복되는 형태, 색채의 대비를 통해 이 그림을 눈으로 보는 교향곡처럼 구성하고 싶었던 겁니다.

- 조르주 쇠라, 「집념의 점으로 완성해낸 교향곡」 중에서

에두아르 마네는 그런 화가였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보는 것을 낯설게 만들 줄 아는 사람. 그는 현실 속 인물들에게 집중해 카페에 앉은 여성, 거리의 노동자, 여유롭게 누운 여성의 누드를 그렸죠. 미술은 도덕이나 아름다움만 그리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세계가, 늘 보던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니라는 것을요. ‘그림은 애초에 가짜야. 내가 느끼는 파리는 이런걸? 그야말로 모순 그 자체인 도시지.’ 그 당시 파리는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외로운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사람들은 더 많이 모였지만, 서로의 마음은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인사, 가장 솔직한 인사 같기도 합니다. “나는 이렇게 세상을 보았다. 당신의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가?”

- 에두아르 마네, 「화려한 조명 아래 현실을 비추는 거울」 중에서

카미유 피사로의 〈센강과 루브르, 파리〉를 바라보면 많은 생각이 몰려옵니다. 1903년, 화가가 생애 마지막 해에 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지요. 젊은 시절 그는 인상주의의 중심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시대를 이끌었고 누구보다 깊이 자연과 삶을 껴안았습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병으로 인해 더 이상 햇살 아래서 들판을 거닐 수 없었습니다. 병은 그에게서 걸어다닐 자유를 빼앗았지만, 대신 창문 너머의 세계를 오롯이 관찰할 시간과 자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는 한 점의 그림 안에 사계절을 담듯 수많은 삶의 결을 가만히 흘려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보낸 따뜻한 시간, 병으로 무너져가는 몸,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시야, 붓을 드는 날과 그렇지 못한 날들. 그 모든 날이 삶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잠깐 스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날이 아름다웠다고, 그는 이 그림으로 고백하는 듯합니다.

- 카미유 피사로, 「고백처럼 남긴 마지막 풍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