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제1편 계計
제2편 작전作戰
제3편 모공謀攻
제4편 형形
제5편 세勢
제6편 허실虛實
제7편 군쟁軍爭
제8편 구변九變
제9편 행군行軍
제10편 지형地形
제11편 구지九地
제12편 화공火攻
제13편 용간用間
◆ 책 속으로
실상을 끄집어내는 능력이 전쟁을 승패를 좌우하는 만큼, 그 능력을 배양하려는 노력 역시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어서 한 천재의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1805년 울름 전투에서 나폴레옹과 맞섰던 오스트리아 사령관 카를 마크는 나폴레옹의 미스터리로 고민하다가 정신이 상이 되어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나폴레옹의 미스터리란, 나폴레옹군의 불가사의한 이동 능력이었다. 아니, 출몰이라는 표현이 옳겠다. 그전까지의 전쟁 은 전투 지역에 투입할 군대를 미리 모아놓고 벌이는 것이 정석이었다. 불확실 한 지도, 좁은 도로, 뒤처지는 병참 능력과 보병 중심의 군대라는 특성으로 인해 당시의 지휘관들은 전투 예상 지역에 병력을 모아놓고 전투를 시작했다. 뒤 에 숨겨놓은 군대가 있다고 해도 멀리 떨어트려 놓을 수는 없었다. 이런 뻔한 속임수를 탐지하기 위해 양측은 서로 기병을 동원해 보병의 하루 이동 범위를 정찰했다. 그 안에 적군이 없다면 이 전장에 있는 군대가 전부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이 범주를 넘어서 심하면 수백 킬로미터 밖에 있는 군단을 서로 다른 경로로 이동시켜, 정해진 시간에 전투지에 도착하게 했다. 눈앞에 있는 나폴레옹군의 규모만 보고 전투에 돌입한 상대는 전투 중에 갑 자기 등장하는 프랑스군에 기겁하고 패전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지금의 체코에서 벌어졌는데, 다부 원수가 110킬로미터의 거리를 이틀 만에 강행군으로 돌파해서 전장에 도착했다. - 23-24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논리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며, 가장 위험한 사람은 대책 없는 강경론자다. 전쟁에서는 강경론이 득세한다. 그 직전에 작은 승리라도 거두었다면, 신중론을 펴는 사람은 비겁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용사가 될 수 없다. 리더는 경박해서 용감해 보이는 사람과 진정한 투사, 겁이 많아서 신중한 사람과 시야가 넓어서 신중한 사람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런 참모들이 하는 조언을 받아들여 싸울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판단할 수 있다.
몽골군이라고 하면 전투적이고 야성적인 전사를 연상하기 쉽다. 실제로 칭기즈칸 이전에는 그런 인물이 용사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전사의 기준을 바꿨다. 칭기즈칸이 가장 꺼린 리더가 대책 없이 용감하고 무모한 전사였다. 칭기즈칸은 그런 인물은 아예 전쟁터에서 격리해 말 먹이는 곳으로 쫓아 보냈다. 칭기즈칸에게 우수한 장교는 싸울 때와 싸우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사람, 공격을 개시할 최적의 타이밍까지 꾹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혜와 인내, 칭기즈칸은 초원의 야만적인 전사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가지 기준을 철저히 준수했고, 그의 군대는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되었다. - 148쪽
손자의 문제의식은 전쟁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우의 상황’ 다시 말해 예측 불가능하며, 아군과 적군이 지략을 다해 치고받는 변화무쌍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이다. 장거리 원정과 정복 전쟁에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본국에서 수없이 많은 전투를 겪고, 아무리 많은 훈련을 했어도 대비할 수 없다. 신천지를 만날 때마다 충분한 데이터를 준비하고 뛰어들려고 하다간 100년이 걸려도 천하통일은 이루지 못한다. 손자의 이 말뜻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아침에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오늘날, 내일의 변화에 완전하게 대비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유일한 방법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여기서 손자가 말한 지피지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알 수 있다. 미지의 상황에서 대응하는 능력과 반응이다. 154-155
손자는 도하를 시도하는 적이 물속에 있을 때 공격하지 말고 절반쯤 도하한 뒤에 공격하라고 했다. 이들을 공격할 때도 물가에 붙어서 싸우지 말고 주변의 고지대를 이용하라고 충고한다.
이 말에 반대하는 지휘관도 있을 것이다. 도하 작전이나 상륙 작전의 성패는 교두보의 확보에 달려 있다. 교두보를 허용하지 않고, 적의 후속 부대가 계속 건너오지 못하게 하려면 아군을 물가에 붙여서 교두보를 설치할 여지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물가에 붙어서 싸우면 결국 전투는 아군 맨 앞 열과 적군 맨 앞 열의 싸움이 된다.
한마디로 손자는 지형을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물가 주변에는 비탈이나 고지대가 있게 마련이다. 손자는 그 지형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교두보의 확보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교두보에만 집착해서 스스로 전술을 제한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전략과 전술을 구상할 때 ‘교두보’와 같이 형식적인 것들에 집착해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335쪽
용병의 정수는 속도라는 이 통찰은 《손자병법》에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서양에서도 나폴레옹 시대 이전에 이미 《손자병법》을 번역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현대까지도 동서양 장군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고대의 병서임에도 현대전에서까지 존중받은 결정적 요인은 손자가 병서 곳곳에서 속도를 이용한 전술 원리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손자가 살았던 시대는 분열과 반목이 횡행했다. 한 나라의 군대는 여러 반목하는 집단과 거들먹거리는 귀족 집단의 군대 연합체였다. 손자는 그런 시대를 살았기에 분열의 위력에 일찍 주목했고, 이를 전술에 적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열의 수단으로 속도와 기동을 제시한 것은 놀라운 통찰이다. 당시는 중원에 아직 기병이 등장하지도 않았고, 전차는 활용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기병은 유목민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도 손자는 기병전이 가능할 때 나 상상할 수 있는 개념인 속도의 전술을 이론으로 전개시켰다. 이런 통찰력이 《손자병법》의 진정한 생명력이다. - 397-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