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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거장 황석영의 귀환!
육백년을 관통하며 펼쳐지는 역사와 생명에 관한 압도적 서사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더없이 깊고 장엄한 세계
모든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위대한 이야기
『할매』와 같은 소설은 오늘날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한편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으로 소설을 읽다가 수억년의 시간을 건너 지구에 추락한 작은 운석의 틈새에서 하루살이가 장엄하고도 허망한 생을 마감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정지아(소설가)
한국문학의 가장 높은 산, 만해문학상·대산문학상·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황석영이 장편소설 『할매』로 돌아왔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전세계를 열광시킨 『철도원 삼대』(창비 2020)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저자는 한국 근현대 노동자의 삶을 묵직한 서사로 꿰뚫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장구한 역사와 인간 너머의 생명으로 이야기의 지평을 한층 넓혔다. 지구적 생명을 감싸안는 황석영 문학의 새로운 경지라 이를 만하다. 이 소설은 한마리 새의 죽음에서 싹터 600년의 세월을 겪어온 팽나무 ‘할매’를 중심축으로 이 땅의 아픈 역사와 민중의 삶을 장대하게 엮어낸다.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이 별개일 수 없으며 모든 존재가 거대한 인연의 그물망 속에서 순환한다는 웅숭깊은 깨달음을 전하며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하고도 아름답게 존재의 근원에 대해 질문한다. 또한 황석영 특유의 힘 있는 필치와 압도적인 서사는 읽는 이를 단숨에 시공을 가로질러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격동의 역사 현장으로 데려다놓는다. 한반도의 비극적 역사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풀벌레의 날갯짓부터 갯벌의 숨소리까지 소설이 포착할 수 있는 세계가 이토록 넓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의 말
이 나무가 통과한 육백년이라는 시간은 물론 사람이 정한 시간일 뿐이며, 하늘의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바다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구분되지 않는 흐름 가운데 있다. 나는 사람으로서 이 육백년을 나무와 더불어 생각해보기로 했다. 불교의 시간 개념 가운데 윤회를 떠올렸다. 그렇지만 윤회란 고대 브라만교 이래로 내려온 생각일 뿐, 석가모니는 윤회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관계의 영원한 순환에 대하여 말하고 카르마의 이어짐에 대하여 말했다. 브라만교나 후대의 세속 불교가 전도와 사원의 유지를 위하여 윤회를 말하고 있을 뿐, 석가모니는 죽음 이후나 그 어떤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하여도 침묵했다. 가령 내가 죽어 수백의 화학물질이 분해되어 어느 소나무 뿌리를 타고 올라 나뭇가지 끝의 일부분이 되어 다시 수백년 마을 풍경을 내다본다든가 하는 상상은 브라만의 영원한 자아 ‘아트만’과 상관없으니, 석가모니 식으로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이 나무를 둘러싼 육백년은 역사가 아니라 인연과 관계의 순환이며 카르마의 계속되는 전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년 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부처의 ‘열반경’과 해월 최시형의 ‘사인여천’에 깃든 설법을 읽으며,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던 생각이 군산에 와서 ‘팽나무’를 만나면서 이제야 성사되었다.
생사는 물론 세상만사는 인연에 따라 변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벽은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큰 바람일 것이다.
●추천사
백지연 (문학평론가)
황석영의 『할매』는 하나의 작은 씨앗이 얼마나 광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를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웅대한 시적 서사의 세계로 보여준다. 개똥지빠귀가 관목 숲으로 날아오는 소설의 첫 장면은 한쌍의 새가 사랑을 나누고 새끼들을 낳아 키우다가 엄혹한 생존 경쟁 속에서 온힘을 다하다 죽음을 맞는 일련의 과정을 함축적으로 포착한다. 죽은 새의 뱃속에 든 열매가 부드러운 흙으로 스며들어 훗날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게 된다는 이야기의 서장은 이어서 기록될 인간사에 스며든 자연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우주의 시간을 품은 이 장대한 기억의 서사를 끌고 가는 진정한 이야기꾼은 육백년의 시간을 살아온 군산 하제마을의 팽나무다. 가뭄과 홍수, 굶주림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삶과 동반한 팽나무의 역사는 근현대 역사를 가로지르는 혁명의 불길을 묵묵히 감싸안는다. 새세상을 향한 존재들의 투쟁과 꿈을 자신의 나이테에 새겨 넣은 팽나무는 고유한 장소성의 기억을 품고 이제 갯벌 생태계의 존재들이 내는 삶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이렇듯 민담적 유산을 창조적으로 되살리는 함축적인 서사의 실험은 문명전환기에 대응하는 오늘 우리 문학의 성취와 현재성을 아로새기고 있다. “계절의 재활과 성장과 갈무리와 휴지의 반복”을 소설의 이름으로 풍요롭게 담아낸 이 작품을 읽으며 우리는 한국문학의 웅장한 나이테를 거듭 확인한다.
전우용 (역사학자)
『장길산』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으며 성년의 눈을 뜬 데다가 소설에 관해 이러쿵저러쿵할 자격이 없는 나로서는, 황석영 선생의 작품에 감히 추천사라는 제목의 글을 붙일 수 없다.
내가 이 책에 관해 쓸 수 있는 글은 다만 ‘감탄사’다.
선생의 마음은 민중, 민족, 인류를 넘어 뭇 생명을 담을 정도로 계속 커지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개똥지빠귀와 팽나무와 서로 다른 시대를 산 사람들이 한 식구가 되는 놀라운 세계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노추와 노욕이 넘쳐나는 시대, 사람들의 인생 항로에 밝은 등대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
정지아 (=소설가)
황석영은 늙지 않는 작가였다. 최근작인 『철도원 삼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젊은 어떤 작가보다 더 예리하게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모순을 천착해왔다. 『할매』를 읽으니 알겠다. 황석영은 젊은 날과 다름없이 날카롭게 현실을 탐구하는 한편, 늙어가고, 그리하여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었다.
『할매』와 같은 소설은 환갑에 다다른 오늘날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할매』는 아무르 강변의 개똥지빠귀에서 시작하여 육백년 묵은 늙은 팽나무의 전언으로 막을 내린다. 한편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으로 얼떨떨하게 소설을 읽다가 수억년의 시간을 건너 지구에 추락한 작은 운석의 틈새에서 하루살이가 장엄하고도 허망한 생을 마감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다. 한낱 미물에 이르기까지 태어나고 죽어야 하는 공동 운명의 ‘생명’ 그 자체가 주인공이다. 황석영은 사회구조를 뛰어넘어 생명의 서글픈 운명에까지 냉철한 카메라를 확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비극이 아니다. 개똥지빠귀의 뱃속에서 팽나무가 자라나고 사람이 그 열매를 먹고 사람의 육신을 먹은 칠게를 다시 사람이 먹는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된 채 기나긴 시간과 공간을 버텨온 것이다. 한 개체가 스러진다고 해서 비감에 잠길 필요는 없다고, 팽나무를 키워낸 개똥지빠귀가 속삭이는 듯하다. 백세 어머니를 둔 나는 오늘 밤, 여느 때보다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의 생은 또 어디로 흘러갈까? 『할매』는 백세 어머니가, 그리고 백세 어머니를 둔 늙어가는 내가 꾼 한바탕의 꿈일지도 모르겠다.
●책 속으로
개똥지빠귀의 분해된 몸이 녹아들어 기름진 땅속으로 뿌리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나갔고, 어린 팽나무 싹은 여름이 되자 묘목이 되어 몇개의 가냘픈 가지와 잎사귀가 돋아나와 바람에 팔랑대고 있었다. 바람과 햇빛과 물안개와 가랑비와 폭풍까지 견디며 버티어낸 어린 팽나무는 다시 겨울이 오자 추위에 죽어버린 듯, 삭풍 속에 꽂혀 있는 메마른 작대기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이 팽나무는 스스로 죽음 같은 겨울의 정지와 봄마다 찾아오는 새 생명의 활기를 깨닫게 되었다.
-31면
몽각은 그 풀이 하나의 나무 모양을 하고 제 키만큼 자랐을 때, 잎을 따서 높다란 고목 팽나무의 큰 가지 위에 올려주며 중얼거렸다. 할매, 이것이 당신 자식이라오. 내가 키웠어요. 몽각은 이 빈터의 오랜 주인이었던 고목에게 자기도 한식구가 되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77~78면
그는 걸어가서 나무 둥치에 등을 대고 가만히 앉아보았다. 나는 없다. 나무도 풀도 물도 바람도 돌도 모두 나와 같다. 지금 여기에 모두 다 그냥 있다. 서로가 무심하고 편안하다. (…) 그는 끝없는 갯벌을 향하여 아주 멀리까지 걸어 나갔다. 아무런 생각 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온몸이 바람처럼 가벼웠다. 무엇인가 많은 것이 빠져나가버렸다.
-81~82면
그는 또한 시천주를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에게로 확장하여 모든 만물이 하늘님을 모시지 않은 존재가 없다고 했다. 어린이도 베 짜는 며느리도 집에 오시는 손님도 모두 하늘님이며, 하늘을 나는 새도, 들판에 피어 있는 한송이 꽃도, 그리고 졸졸 흘러가는 시냇물도 모두 하늘님이었다.
-156면
동학군은 처음에는 징에 꽹과리에 북을 장하게 짓치면서 고개를 향하여 돌격했다. 따다닥 따다닥 하는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탄환이 날아오는데 무슨 벌레 소리 같았다. 사람들이 픽픽 쓰러졌다. 맨 앞에서 화승총 가진 대열이 나아가면서 일제히 총을 놓았지만 거리가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농민군은 앞으로 뛰어나갔고 가을 추수 볏단 넘어가듯 대열이 일제히 쓰러지곤 했다.
-162면
비가 한줄금이라도 내리면 이제나 저제나 바닷물을 기다리던 갯벌 생물들이 모두 갯벌 위로 올라왔다. 갯벌 위로 올라온 작은 조개들은 몸을 세우고 필사적으로 펄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지만 이미 말라버린 갯벌은 그 작은 몸마저 받아주지 않았다. 갯벌 생물들은 여기저기서 입을 벌리고 바닷물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장마가 지고 방조제 안의 염도가 낮아지면 모두 입을 벌리고 죽어갈 것이다.
-2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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